세계의 목욕 문화
목욕 문화는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테르마이에서 사교와 정치를 논했고, 터키에는 정결과 공동체를 위한 함맘이 있습니다. 핀란드에는 사우나가, 일본에는 온천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고유한 목욕 문화가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전통 목욕탕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탕에 몸을 담근 채 편안히 쉬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한국의 목욕 문화는 영화 한 장면보다 훨씬 깊습니다. 한국에서 목욕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왕들의 휴양
조선시대 왕들은 치료와 휴식을 위해 온천을 찾았습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안질 치료를 위해 온양온천으로 여러 차례 행차했습니다. 이후 현종,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왕이 이곳에 행궁을 짓고 머물렀습니다.
온천에 갈 수 없을 때는 온천물을 궁궐로 가져와 목욕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숙종실록과 영조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따뜻한 물은 사치가 아니라 회복을 위해 필수였습니다.
일반인의 휴양 공간
20세기 초, 목욕 문화는 왕실을 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1924년 인천 월미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인 월미도 조탕(潮湯)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하 암반층에서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목욕물로 사용했습니다.
온천과 해수탕은 왕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쉼을 찾을 수 있는 휴양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숨을 돌리는 곳이었습니다.
동네 목욕탕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도시화와 함께 대중목욕탕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거의 모든 동네에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온탕, 냉탕, 사우나. 매주 목욕탕을 찾는 것이 일상의 리듬이었습니다.
동네 목욕탕의 역할은 분명했습니다. 쉬러 가는 곳. 사람들은 긴 하루를 마치고 피로를 풀었고, 이웃들과 안부를 나눴습니다. 1968년에 발명된 이태리타올은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때를 밀어내는 것은 단순히 몸의 때만이 아니라 한 주간 쌓인 피로까지 함께였습니다.
전성기에는 서울에만 수천 개의 목욕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700개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전통
요즘 아파트에는 화장실 내부에 욕실이 있습니다. 매주 목욕탕을 찾는 일은 더 이상 일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쉬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공간입니다. 같은 따뜻한 물. 같은 쉬어가는 시간. 이제는 우리 집에서—욕조에서, 족욕 대야에서, 잠들기 전 15분 동안.
OVER THE WENZDAY는 이 전통을 이어갑니다. 왕들이 온천을 찾았던 이유, 이웃들이 동네 목욕탕을 찾았던 이유와 같습니다. 쉼, 회복, 그리고 숨 돌릴 수 있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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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은 사라져도, 한국의 목욕 문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